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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학] 美적·性적 편식의 이유

by uX

목차

왜 예술은 취향을 탈까?

보링거의 주장: 결여가 취향을 결정한다

스칼렛 vs 나탈리

 

 

 

미술사학자들이 오래전부터 풀지 못해 애태워온 질문이 하나 있다. 사람들은 왜 특정 화가를 다른 화가보다 더 열렬히 선호하는 걸까? 똑같이 위대한 걸작을 탄생시킨 거장으로 추앙받는 두 화가를 놓고도 한쪽을 더 선호하는 경향이 존재하는 걸 보면, 정말 의아한 일이기는 하다.

 

이 수수께끼를 풀어줄 가장 그럴듯한 대답은, 독일의 미술사학자 빌헬름 보링거(Wilhelm Worringer) <추상과 감정이입>이라는 제목으로 1907년 발표한 논문에서 찾을 수 있다.

 

보링거의 주장에 따르면, 우리는 누구나 성장하면서 내면의 무언가가 결여되있다. 부모님이나 성장환경이 늘 완벽할 수는 없음으로, 거기에서 저마다 나름의 좌절을 경험하고, 어느 부분이 취약하거나 불안정한 상태로 성격이 형성된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이런 약점과 결함이 미술 작품을 감상할 때 갖는 호감과 반감의 취향을 좌우하게 되는 것이다.

 

모든 미술 작품에는 특유의 심리학적, 도덕적 분위기가 담겨있다. 그림에 따라 평온하거나 불안하거나, 과감하거나 조심스럽거나, 절제되거나 대담하거나, 남성적이거나 여성적이거나, 세속적이거나 고상하다. 이런 여러 가지 특징 중 우리가 어떤 분위기를 선호하는지 살펴보면, 우리의 심리적 내력이 그대로 반영돼 나타난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우리 내면의 취약한 부분이나 결핍 요소에 따라 작품에 대한 호불호가 결정된다.

 

우리는 내면의 결함을 보상해주고 건강한 상태를 되찾도록 도와줄 만한 속성이 담긴 작품을 갈망한다. 말하자면 우리가 미술 작품에서 보고 싶어 하는 것은, 우리의 삶에 결여되어 있는 특정한 속성이다. 그래서 어떤 작품이 심리적으로 결핍된 가치를 채워줄 때 우리는 그 작품을 보고 ‘아름답다’고 감탄한다. 반면 위협적인 느낌을 주는 작품이나 고압적인 분위기가 느껴지는 작품을 대할 때는 ‘보기 싫다’는 반감이나 거부감을 갖는다.

 

보링거는 자신의 이론을 구체화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논리를 제시했다. 침착하고 신중하며 규율을 중시하는 사람들은 격정적이고 드라마틱한 작품에 끌리는 경우가 많으며, 그런 작품을 감상함으로써 건조하고 메마른 감정에 대한 보상을 받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이런 사람들은 라틴계 작가들의 작품이 내뿜는 거침없는 에너지와 열정에 쉽게 감동하고, 화폭에 강렬한 암흑을 담아낸 고야의 작품이나 스페인 바로크 양식의 몽환적인 건축물에 감탄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보링거의 이론에 따르면, 이런 강렬한 취향의 예술품은, 불안감이 높은 성장환경에서 자랐거나, 쉽게 흥분하는 성격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위압감을 주기 때문에 별로 인기가 없다. 이렇게 쉽게 흥분하는 유형의 사람들은 바로크 양식이 별로 맞지 않고, 차분하고 논리적인 예술품을 훨씬 더 아름답다고 여기는 것이 보통이다. 이런 사람들은 엄격하고 치밀한 격식을 갖춘 바흐의 칸타타, 좌우대칭이 자로 잰 듯 꼭 맞고 규칙적인 프랑스식 정원, 아그네스 마틴이나 마크 로스코 같은 미니멀리즘 화가의 차분한 공백이 느껴지는 작품을 선호하는 경우가 많다.

 

 

보링거의 이론을 보면 이런 의문도 품어볼 만하다. 누군가가 예술작품을 보면서 그것을 ‘아름답다’ 판단하기 위해선, 그 사람의 삶에서 무엇이 결여되어야 할까? 또 무엇을 두려워해야 ‘보기 싫다’는 생각이 들까?

 

한편 보링거의 이론이 취하는 접근법을 통해서, 우리가 어떤 사람을 다른 사람들보다 섹시하다고 느끼는 이유에 대해서도 흥미진진한 설명이 가능해진다.

 

예술작품에 대한 위와 같은 풀이는, 성에도 똑같이 적용해볼 수 있다. 선천적으로 문제가 있거나, 혹은 성장과정에서 뜻밖의 사건을 겪었다고 치자. 그로 인해 우리는 불균형한 상태로 (어딘가가 과도하거나 취약한 상태로) 성인기에 이르렀다. 마음속의 어떤 부분에서는 너무 넘치고 또 어떤 부분에서는 너무 부족해졌다. 걱정이 너무 많거나 지나치게 침착할 수도 있고, 너무 독단적이거나 너무 수동적일 수도 있으며, 너무 현학적이거나 너무 실용적일 수도 있고, 너무 남성적이거나 너무 여성적일 수도 있다. 그래서 상대에게서 자신에게 없는 보완적인 특징을 찾아냈을 때, 그 사람을 ‘섹시하다’고 느끼고, 우리 자신의 불균형적인 측면을 더 자극하는 사람에게는 반감을 갖게 된다.

 

외관상 똑같이 건강해 보이는 두 명의 사람과 만나게 되었다고 치자. 편의상 두 사람을 나탈리 포트만과 스칼렛 요한슨이라고 가정해보자. 우리는 저마다 독특한 성격 형성의 내력을 거쳐 온 탓에, 두 사람 중 한쪽에게만 눈이 번쩍 떠질 것이다.

 

스칼렛

나탈리

우리가 지나치게 과장이 심하고 신뢰하기 힘든 부모 밑에서 자랐고, 그러한 부모의 성향 때문에 정신적 타격을 입었다고 가정해보자. 그러면 우리는 스칼렛 요한슨의 외모에서 풍기는 자극적이고 과장된 기미가 왠지 조금 불편하다는 암시를 받을지 모른다. 스칼렛의 광대뼈를 보고 이미 질리도록 익숙한 자기중심적 기질을 느끼고, 눈을 보고 우리 자신이 걸핏하면 그러듯 격렬한 분노를 쉽게 터뜨릴 것 같은 인상이 느껴져서, 결국엔 자신에게 별로 유익할 것 같지 않다고 판단할지 모른다.

 

그래서 객관적으로 볼 때 미모 면에서는 두 사람 다 막상막하지만, 스칼렛이 아닌 나탈리를 더 좋아하게 될지 모른다. 가령 심기증 기질이 있던 어머니 밑에서 자랐던 사람이라면, 마침 나탈리의 눈에서 그토록 갈망하던 차분함이 느껴져서 반할 수도 있다. 나탈리 포트만의 이마에서 굳은 의지와 실용적인 성격이 느껴져서, 자신은 갖지 못한 그런 면모에 마음이 끌리게 될 수도 있다.

 

하루에도 여러 번 집 열쇠를 잃어버리고, 보험금 청구 양식을 작성할 때 거의 패닉에 빠지는 사람이라면, 자신은 죽을 때 까지 절대로 가지지 못할 것 같은 야무지고 똑 부러지는 성격이 얼마나 매력적이겠는가? 경솔하고 무절제한 자신의 성격이 마음에 안 들었던 사람이라면, 그녀의 입술에서 느껴지는 자제력과 극기심에 반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런 입술을 가진 사람이라면 곤란할 정도로 무절제한 자신의 삶에 완벽한 균형을 선물해줄 것만 같으니까.

 

이제 정리해보자. 나탈리 포트만이나 스칼렛 요한슨 중 유독 한 사람에게만 끌리는 이유를 알겠는가? 이렇게 우리 자신에게 결여된 부분에 비추어 살펴보면, 두 사람 모두 아름답지만 왜 그중에서도 꼭 한 사람에게만 끌리는지가 그럴듯하게 설명된다. 그것은 아그네스 마틴이나 카라바조의 그림들에 대해 사람마다 선호하는 성향이 왜 다른지에 대한 이유이기도 하다.

 

우리가 ‘아름답다’거나 ‘섹시하다’고 느끼는 특성들은, 우리 스스로의 균형을 다시 맞추기 위해 절실히 갈망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암시해준다.

 

 

출처: 성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해보는 법, 알랭 드 보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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