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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 외계문명이 보낸 편지: 신은 바보다

by uX

지구인 A는 외계인의 편지를 받았다 주장한다.

아래는 그가 받았다고 주장하는 편지의 전문이다.

 

 

  , 지구인아. 

 

그대의 조상이 있었기 때문에 네가 있겠지만 그대의 조상은 지금 없다. 따라서 '네가 것은 창조주가 <지금도 여전히> 있기 때문이다'라는 따위를 굳게 믿을 근거는 아무데도 없다. 교묘하게 작동하는 우주의 법칙이 있다 해도 창조의지(신이라 불러도 되겠지만, 그렇게 되면  이해하 까다로워지기 때문에 글에서는 <그놈>이라고 무르겠다) 지금까지 존재하고 있다고는  없다.

 

그놈이 죽어 오래전에 우주에서 사라져 버렸다 해도 하나 이상할 것이  없다. 기계적으로 지금  순간에도 만들어진 법칙이 작동하고  있을 뿐이다. 그렇다고 컴퓨터가  처리하는 모습을 당신이 지켜볼 필요는 없으며 그대로 계산을 시켜놓고, 산책을 하든가   당신이 죽게 된다 해도 기계는 여전히 작동 것이다. 따라서 말이 많아졌지만, 그놈이 가령 태고 적부터 있었다  해도 지금까지 존재한다는 거는 전혀 없다. 차라리 우주 법칙을 꾸며낸 직후 일지감치 꺼져버렸다는 Z909은하계 기밀정보 쪽을 믿 좋을 것이다. 그러나 사고체 생물, 특히 지구인은 아직까지도 여전히  하느님이 있다고 생각할 , 전혀라고 말해도 정도로, 지성이 없는 생물이다.

 

여기에 조그만 자극을 주기 위해   한국어라는 구인의 언어 빌려 말한다. 당신들 역시 매일매일, 오늘도, 내일도, 모레도, 죽을 때까지 똑같은 되풀이하는 생활이 지겹기도 터이고, 권태와 맞부닥치지 않으려고, 생활에 변화를 주고 싶을 지도 모르니 우리 함께 조촐한 논리 게임이라도 해보자.

 

  첫머리에서도 말했지만, 자네 할아버지보다  자네가 그리고 자네보다 자네  손자 쪽이 우수한 인재가 된다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이다. 아니, 많은 경우 현상을 한정지어놓고 다른  측면에서 보면 뒤에 나타나 생물 쪽이 우수한 것은 당연하다.(무엇을 기준으로 우수한가 하는 문제는 여기선 무시하자)

 

  그렇다면 가령 , 아니 실례, 그놈이  처음 있었다고 해서 자네보다  우월하다는 논리는 성립되지 않는다. 따라서 그놈이 최초로 우주에 존재했다는 것은 전혀 그놈의 위대성을 밝히는 근거가 되지 못한. 신이 바보라는 고찰의 요점은 바로 이것이다. 하여, 최초에 있었기 때문에 위대하다란 말은 오호, 논리적이로다! 이를 통해, 처음에  있었으니까 위대하다거나 지배자라는 논리는  사라졌다. 항상 뒷세대 쪽이 우수할 수밖에 없다.

 

  자네들 지구인으로부터 가끔 이런 질문을  받는다. "우주는 있느냐?"   질문에 대해서는, 질문의 구조부터 먼저 분해해 보겠다. 우리는 질문을 이렇게 바꾸어 말한다. " 우주가 있느냐고 인간은  묻는가?" 이런 이야기가 있다. 은하계 변두리에 있는 태양계의 인기 퀴즈 프로그램<왜냐? 월드>에서 그전까지 출제된  1천만 개에 이르는 퀴즈를 아뭉개는 문제가 나왔다. 그건 <, 왜인가?>였다.  문제가 출제된 1년후,   태양계의 주민 절반이 자살했다고 한다. 어쨌거나 자네들이 죽건 살건 우리와는 상관없지만 일단 같은 논법으로 해보자.

 

  자네들은 <>라고 묻느냐? ' 처음의  질문을 분해하자' 것은 언어에  대한 정의가 없으면 질문은 성립되지 않기 때문이다. " 우주가 있느냐고, 인간은 묻는가?" <> 사전적 의미를 살펴보면 까닭, 이유, 원인, 동기 등의 뜻을 지닌다. 가운데 자네들이 말하는 것은 <그놈> <동기>라고 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왜냐하면 우주의 물리적  발생과정에 대해서는 자네들 물음에 대한 대답으로 지구가 찌그러질 만큼 많은 방정식으로 이루어진 문서를  자네들의 혹성에 보내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자네들이 원하는 것은 결코 우주의 현상적 설명은 아닐 것이다. 단지 지구를  만든 동기, 의지의 원천을 알고 싶어할 뿐이라고 추측하여 이야기를 진행시켜 보겠다. 

 

  우주란, 아니 대체 어디에 있는 우주를 말하는가?  이렇게 말하는 것은 자네들이 말하는 우주란 자네들의 지각 범위 안의 정보밖에 되지 않는 만큼, 그것은 우리 또는 우리 이외의 생명이 지각하는 우주와 본질이 다르다. 자네들은 잠꼬대처럼 <만물> 외치지만, 자네들은 만물의 1조분의 1만큼도 보지 못한 상태이니 이건 전혀 의미가 없는 언어다. 그러므로  자네들이 묻는 우주의 범위를 어떻게 한정지으면 되겠나? 이건 다음의 말에서도 문제가 된다.  있다??? 그러면 <있다> 어떤 상태를 말하는 ? 아마 자네들이 보고 만지고 추측할  있는 범위 안에서 자네들은 "있다"  말을 하고 있는 것일 터이니, 결국 자네들의 질문은 좀더  엄밀하게 재구성할 필요가 있다. 정확하게  말하면 이런 표현이  것이다.

 

"자네들에게 지각된다는 이유만으로, 자네들이 인식하는 감각  정보만으로 이름 붙여진 우주(말하자면 자네들에게 보이는 , 그러니까 아프다든가 춥다든가 하는 식으로 지각에 영향을 미치는  전체) 어떤 동기로  만들어졌으며, 어떤 목적으로  제작되었는가? 라고, 자네들은  의문을 갖는?" 정도겠지. , 질문에서 우리의 논리 회로가 받아들이는 것은 이렇다.

 

  자네들은 언제부터, 우주 또는 창조의지 <그놈> 인격적인 존재로 인식했는가? 자네들 인간에게 무엇이든 자네들과 같은 것으로 의인화하는 나쁜 버릇이 있는 것같다. 무엇 때문에 그놈이 인간적인 존재여야 하는가? 그런지 한번 대답해보라. 자네들이  말하는 자연계의 어디에 대체 인간적인 위가 있는가 말이다? 자네들 이외의 모든 , 아니 자네들 육체의 세포 하나하나 조차 애당초 인간적인 것도 인격적인 것도 아니다. 그런데 어째서 만물의 제작자가 인간적이어야 필요가 있는가 말이다. 네들이 갖고 있는 사고의 망상은 다음과 같다. 그것은 우주를 창조한 그놈이 피조물보다 상위에 있다는 망상이다. 그런데 대체 <상위> 무얼 말하는건가? 대답해보라. 모르겠다면, 내가 간단한 역설 또는 설을 말해볼까.

 

  불도저는 자네들 인간보다 힘이 약한가? 자네들 대가리는 쇠망치보다 단단한가?  자네들이 갖고 다니 전자수첩에 입력된 주소와 전화번호를 자네들은 기억할   있는가?? 이에 대한 대답은 모두 NO. 그렇다면, 이렇게된다. 우주를 만든 그놈이 자네보다 물리적으로 혹은 지적으로 강하다는 근거는 아무데 없다. 자네가 있는 것을 그놈도 있다고 없다. 자네들은 자신이 없는 , 싫은 것을 시키려고 도구나 연장을 만들어내지.

 

  그렇다면, 우주도 그렇게 만들어졌다고 이해할 있을 것이다. 이것은  자네들이 아주 이해하기 쉬운 논리적인 비유겠지. , 창조의 동기는 제작자의 대행 업무인 것이다. 

 

  이렇게 되면, 대행을 위해 만들어진 제품은 항상 창조자보다 상위 수준에 있을 필요가 있다.

 

  전자수첩이 자네 머리통보다 늦게 계산한다면 쓰레기통에 버려지고 만다. 따라서 목적을 제대로 수행하도록 만들어지기 때문에 모든 제품은  그놈보다 기능적으로 우수하다는 말이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이미 폐품이 되어 있을 테니까. , 이렇게는 말할 있다. 그놈은 뭐든 조금씩은 있는 놈이라고. 자네들이 암산을 어느 정도 있는 것처럼. 비유하면, 자네들도 50미터쯤은 잠수할 있는 것과 . 하지만 400미터까지 잠수해야 때는 구질구질하게 강철통을  만들어야만 하겠지. 여기서 잠수함은 잠수기능에 있어서는 자네들보다 우수한 것이 된다는 말이다. 이렇게  되면, <부분적 기능성의 차원>서는 그놈이 자네들위에 있다거나 상위 존재라는 논리는 간단히 무너져버린다. 별게 아닌 것이 되고 . 

 

  때문에 신을 피조물과 비교한다면 거의 무능하다고 정의할 있다. 이것이 번째 요점이다. 그놈은 솜씨가 없거나 능력이 없다. 

 

  앞서 말한 대로 먼저 있었다고 해서 우월하지는 않다. 왜냐하면,  바퀴벌레는 자네들보다 훨씬 전부터 있었지만 살충제로 당하는 것을 보면 자네들보다 상위에  있다고 하긴 어렵다. 하긴 이것은 어디까지나 자네들이 생각하는 생물의 분류이론이다. 참된 우세종이나 상위 존재는 시간적으로  앞서 있지 않다. 문에 그놈, 신이 태초에 있었으니까 위대하다는 근거는 전혀 없는 것이다. 

 

  다음으로 상위 존재는 실제로 어떤 힘이 있는 것이  아니다. 이로써 신이 만능이라고는 없다고 재정의할 있다. 

 

  또한 그놈이 만물을 창조했다는 논리도  성립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놈이 우리를  만들고, 자네들을 만들었다 해도 빌딩이나 자동차는 자네들이 만든 것이니  말이다. 마찬가지로 산이나 바다나 별이나 양을 그놈이 만들어 운영하고 있는 증거는 아무데도 없다.  예컨대 그놈이 만든 창조 로봇이 우주를 , 관리하고 있다 해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다. 자네들은 이성과 침대에서  삐걱거리며 아이를 만들지, 아이가 백사장에서 만든 모래산까지 관리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말이다. 그러므로 모든 만물의 하나에서 열까지 그놈이 만들었다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어쩌면 그놈은 멍청이 지성체를 만든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이렇게 문제 제기할 있을 것이다. 

 

  대체 누가 어떤 목적으로 우주를 만들었고 지금은 어떤 목적으로 누가 관리하고 있는가? 그런데 지구인들아, 목적이란 것은 본래 목적과 달라진다 해도  하등 이상할 것이 없다. 자네들의 일상생활을 보라. 우주도 마찬가지다. 우주도 처음에는 어떤 목적이 있었다. 해도, 지금까지 그것을 유지하고 있다는 증거 없다. 벌써 오래 전에 다른 목적을 향해 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우주가 먼저 만들어졌느냐는 의문은 무의미해지고, 그보다도 지금 유지되고 있느냐, 앞으로는 어떤  목적을 향해 가게 느냐가 자네들이 고민하기에 알맞은 문제가 것이다. , 그놈이 자네들, 또는 자네들을 만든 다른 , 나아가 생물을 만든 근원의  지성체를 만든 것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단지 만들었다는 것만으로 그놈이 위대하다는 근거는 되지 못한다. 그저 창조자를 창조했다는 이유만으로 마음에도 없는 존경심을 드러낼 필요는 없다. 그것은 자네 자식이 자네를 존경할 필요가 없는 것과 같다. 

 

  이제 마음이 조금 편해졌나? 지구인이여.

 

  , 그럼 자네들은 상위 존재에 대해 어떻게 정의할 작정이지? 그놈을 존경할 필요는 전혀 없어. 대체 지금 무엇이 그놈의 <부권성의 모가지> 붙어 있게 하는냐 말이다.  이런 일은 있을지도 모르겠다. 놈은 다급해지면 자네들에게 마디밖엔 하지 못한다. 그것은, 자네들이 어렸을 때부터 익히 들어본 말이다. 

 

  "누가 먹여주고 있다고 생각하느냐!" 그러나 자네들은 그놈이 있건 말건, 그저 살아가게 된다. 그리고 그놈은 어쩌면 오직 하나의 능력을  갖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우리도 추측하고  있다. 그것은 <전우주의 파괴능력>이다. 그놈에게 남아 있는 능력과 부권을 유지하는 협박은 아마 그것뿐일 것이다. "언제든   우주와 너희들의 즐거운 생활을 때려부술 있단 말이다"하며 그놈은 항상 스위치에 손을 대고 있는 9천억의 나이를 먹은 <꼰대>일지도 모른다.

 

  , 이렇듯 그놈, 신은 존경할 가치조차 없는 존재인데 대체 자네들은 무엇 때문에 그놈 앞에서 랑방귀를 뀌며 두손 모아 우러러 섬기는지 한번  생각해보라. 그놈에게 만약 우주의 <관리 권한> 다고 치자. 그렇다면 그는 <무엇을> 관리하고 있는 것인가? 관리한다는 것은 아주 성가신 일이다. 따라 그놈이 일을 까닭이  없다. 애써 듣는  우주를 만들어놓고는 그걸 어떻게든 지배하려고  만큼 그놈이 바보라면 모르겠지만 원래 관리할 필요 따윈 없는 것이다.

 

  법칙만 만들어놓으면 자동적으로 관리되기 때문이다. 이쯤 되면 그놈도 마지막 주장을 것이다. " 우주에서 발상을 하는 것이다." 발상이라는군. 그놈은 대체 무얼  발상하는 걸까? 거꾸로 생각해보면 어떻겠는가?

 

  애당초 그놈은 발상하지 않고는 있을 없는가? 그놈은 아무래도  권태를 싫어하는 서성대는 애인지 모른다. 그렇다면 우주란 그놈의 심심풀이 부산물일지도 모른다는 가설이  나온다. 작자는 따분함 아주 싫어하는 같다. 그렇다면 한가하기를 바라고 아주 좋아하는 우리들 순수 의식체는 주의 산물은 아닌 것이 된다. 이런 이유로 우리는 그놈에게 "심심한 것은 좋은 일이다"라고 포교하고 것이다.

 

  자네들이 말하는 '우주'란 것도 따져보 시시한 발상의 산물이다. 더구나 잠시도 가만있지 못하는 창조 원숭이의 산물이다.

 

  요점을 정리해보자.

  1. 그놈은 최초에는 있었을지 모르지만, 지금까지 있다는 증거는 없다.

  2. 그놈은 처음에 있었다 해도 별로 위대하지 않다.

  3. 그놈의 기능이 우월하다는 증거는 없다.

  4. 그놈이 만물을 만든 것은 아니다.

  5. 그놈이 관리하고 있는 또한 아니다.

  6. 그놈은 그저 어찌하면 따분하지 않게 영원이라는 시간을 넘길까를 생각하고 아니면 과거에 생각했 안했건, 지금은 이미 <뒈져>, 꺼져버렸을지도 모른다.

  7. 지금의 우주는 전혀 무목적이고 각각의 우주에서 관리자라고 자처하는 지성체에 의해 제멋대로 영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8. 그놈이 만약 살아 있다면 "우주는 내가 생각해낸 거야"하고 특허권 소송을 지금도 벌이고  있는 어빠진 멍청이거나,

  9. "나는 우주를 언제든지 지워버릴 있다" 호언장담하는 <얼간이> 가능성이 높다. 그리하여 신은 어리석은 자이다. 그놈이 위대하다는 흔적은 어디서도 찾아볼  없다. 끝으로 자네들 문화에 대해 우리들이 관찰한 소감을 말해보겠다.

 

    <자네들이 좋아하는 , 우주의 지성체가 싫어하는 >

  사회란, 자네들의 것이든, 우주 민족의 것이든, <죽고  싶지 않다> <고통을 겪고 싶지 않다>   가지의 공포 신경신호에 의해 운영된다. 그것은  생명체가 평균적 생존 상태를 유지하려는 <몸부림> 집합이다.

 

  발전, 성장 또는 진화라는 전혀  정확하게 정의되지 않은   말을 맹목적으로 믿고 자네들은 오늘도 내일도 죽기 직전까지도 같은 짓을  되풀이한다. 자네들은 때론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나날이 새로운 자극과 오락, 철학을 만들어낸다", 그러나 이것은 자네들 스스로의 내부에 품게 <호기심을  현상유지하고 싶다> 심리적 충동으로 여겨진다. 이런 사실을 놓고 보더라도 기본적으로 자네들과 같은 사고 생물에게 발전같은 것은 없으며, 사전에 프로그램 되었고 지금도 작동하는 충동의 유지에 중점이 여져 있을 뿐이다.

 

  발전해가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을 자네들이 <발달>시키고 있는 것은  생존을 위해 호기심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밖에는 되지 못한다. , 특대형 바보의 충동을 자네들은 <호기심>이라고 부리는 프로그램으로 간직하고, 심심하고 따분한 것을 싫어하도록 설계되어  자네들의 문명이란 것은 다음과 같이 뚱그려 말할 있을 것이다.

 

  육체의 정상적 기능, 지성이라고 하는 호기심의 유지, 형성이라는 자기  자신을 몰아세우는 기능을 요한 의무로 짊어지고 살게끔 만들어진 것이 자네들이고, 우주가 존속하려는 본능적인 몸부림의 수단으 만들어 무수한 부산물을 자네들의 문명이라고 한다.  이렇듯 지구의 사고체 생물은 지금 있는 부의 프로그램(나쁘게 말하면 욕망)  유지하기 위해서는 무슨 짓이라도  하며, 자기가 대단하다는 , 그리고 대단한 일을 있다는 망상과 착각을 유지하기 위해 온갖 시시하고 쓰잘 없는 짓을 벌임으로써 쾌감을 갖는 참으로 불쌍한 생물이다.

 

  한편, 우리 의식체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아무것도 필요로 하지  않으며 심심하지도 않다. 자신이 아무것도 못하는 <얼간이>라는 <사실> 안주하기에 많은 일들을  <하지 않기> 때문에 다시 없는 평온함을 누리고 있다. 어느 쪽을 선택하느냐는 자네들의  자유지만 자유라는 말의 정의를 내리는 데에 자네들의 언어를 구사해 설명해도 40세기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이쯤에서 마치겠다.

 

  PS : 우리들 시리우스의 지성은 우리가  만나는 모든 지적 생물에 대하여 언제나  간단하게 테스트를 한다. 먼저 우리는 짧은 시간에 상대방이 갖는 취미, 기호, 사고방식, 외모, 삶에 대한 태도에 대해 아무 근거 없이 부정하고 욕한다. 나아가 상대방이  가장 듣기 싫어할 말을 찾아내어  퍼붓는다. 이렇게 하면 상대방은 즉각 반론을 펴면서 자기 주장을 한다. 혐오나 격노하는 따위 유치한 반응을 보일 우리 생물을 파리 또는 원숭이라고 부른다.

 

  왜냐하면 지적 생물일 경우 자기 자신이 부정될 보이는 정상적 반응은 <저들의 어떤 경험이 나를 부정하게 만드는 것일까?>하고 <판단의 이유> 주목하기 때문이다. 지적  생물은 " 나를 그렇게 단하느냐" 반문한다. 지적 생물은 항상 인식의 근거에 주목한다. 그러나 원숭이나 파리는 자기 보존본능을 반사적으로 드러내 보인다. 그리하여 우리는  나날이 고독한 삶을 산다. 조금  불쾌한 것은 이따금 예고도 없이 "당신의 고요함을 어지럽혀도 괜찮을까요?"하고 우리에게  말을 걸어오는 파리들의 존재이.

 

  그런 우리에게도 즐기는 것은 있다. 우리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완전 소멸이라는 죽음을 맛보는 것이. 번째로 좋아하는 것은 잠자기이다. 번째로 좋아하는 것은 그저 <있는 >이다. 번째는 아하기도 하고 싫어하기도 것인데 그저 <보는  >이다. 따라서 거꾸로 우리가 싫어하는 것은 이런 것들이다. 우리가 번째로 싫어하는 것은 사고하기이다. 우리가 번째로 싫어하는 것은 지껄이는 이다. 우리가 가장 싫어하는 것은 사는 재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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