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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학] 생명이 존엄하다고 말할 수 없다.

by uX

평: 도덕의 계보학, 프리드리히 니체

 

 

1. 선악은 필요에 의해 발명된 편견이다.

널리 퍼진 종교는 번식을 권장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물론 번식을 아니 권장한 종교도 있었지만, 그러한 종교는 곧 멸종했다.

 

선악또한 마찬가지다.

어떠한 인간 집단이 그 집단 관점에서 '좋은걸' 찾고, 번성하기 위해 발명한 규칙이 선악이다.

 

 

2. 생명이 존엄하다고 말할 수 없다.

왜냐하면 생명이 존엄하다는 논리를 세울 수 없기 때문이다.

 

생명은 원자 덩어리가 이룬 현상이다.

정말 작은 그리고 '죽어있는' 원자들이 모여 '살아있는' 현상을 만든다.

 

사과나 파란색이 착하다 나쁘다 말할 수 없는 것처럼,

생명또한 귀하다/귀하지 않다고 말할 수 없다.

 

그럼 언제부터 생명은 '존귀'해졌을까?

 

 

 

예전에는 보다 많은 사람들이 타인의 생명을 짓밟을 수 있었지만,

현대사회에선 각종 법과 '규제'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수가 더 적어졌다.

그리고 이러한 법과 규제가 생긴 이유는, 노동력을 보전하고 존중하는 집단이 더 경쟁력있기 때문이다.

기분 나쁘면 살인하고. 작은 문제도 살인으로 해결하는 집단 A보다, 생명은 생명 그 자체로 존중받아야 믿는 집단 B의 인구와 노동력이 더 강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이러한 관점이 유럽에 유행할 수 있었다. 다시말해, 생명의 존엄함 가치관의 공유는 곧 국력이 된다. (그러나 이것또한 지나치면 또 약점이 된다)

공장에서 '효율'을 위해 죽었거나, 건강을 희생당한 사람들을 생각해보자. 이때, 우리는 이득을 위해 남을 해치는 사람을 비난할 수 있다. 그러나 생명이라면 당연히 존귀하다, 라고는 말할 수 없다.

좀 더 솔직해보자면.. 사실 어떤 것도 좋다 나쁘다 말할 수 없다.

어떠한 관점에서 적절하고 부적절한게 있을 뿐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현대 사회 생존에, 살인은 대다수 개체에게 대게 부적절하다" 는 명제는 성립한다.

생명이 존귀하다는 명제가 성립하려면, 이를 뒷받침하는 명확한 논리가 필요하다.

단순히 존중받아야 하기 때문에 존중받아야 한다,

"그게 너라면 좋겠니?" (즉 존중받지 않는 것이 당신이라면) 라는 식의 논리는 곤란하다.

그런 식의 입장 바꿔 생각하기는 강요나 동정에 호소하는 구걸이 되기 쉽다.

 

 

 

ㅡ여담ㅡ

동물권. 요새 핫한 주제다.

고통을 느낄 수 있는 생명에게 고통을 주면 안된다는 논리.

 

그런데 애초에 고통이란 무엇일까?

고통이란 더 효과적인 생존과 번식을 위해 유기체가 발명한 화학적 통신이다.

각종 동물실험으로 밝혀진 사실이지만, 유년시절 자극(=인풋)없이 좁은 공간에서 자란 유기체는 신경의 미발달로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 꼬집거나 살을 베어도 아무런 고통을 느끼지 못하고, 반응조차 않는 현상이 원숭이와 인간에게도 발견된다. 

 

여기서 한 발짝 나아가, 동물이 전혀 고통받지 않도록 약을 투여하거나 뇌 일부 혹은 전부를 제거해 사육한다고 가정해보자. 그럼 문제가 없는걸까?

전혀 그렇지 않다.

애초에 사육되는 동물에 우리가 괴로움을 느끼는 이유는, 이와 관련된 진화압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인간 종의 행동 양식을 고려했을 때, 그러한 상황에 감정적 불쾌함을 느끼는 것이 생존/번식에 유리하다.

요는, 어떠한 개체가 어떠한 취급을 받는 데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한 상황에 도덕적, 감정적 불쾌함이 느끼는 동물이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불쾌감은 집단 경쟁에서 상당히 유리하며, 그렇기에 아직도 우리 안에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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